광고닫기

우린 봤습니다…부러지지 않는 당신의 마음을

중앙일보

2026.02.09 07:01 2026.02.09 12:3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지난해 12월 월드컵 우승 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린지 본. [AFP=연합뉴스]
‘스키 여제’ 린지 본(42·미국)은 10일 동안 두 차례나 헬리콥터에 실려 스키장을 떠났다. 지난달 30일(이하 한국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헬기 신세를 졌다. 8일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여자 활강 결승에서 레이스 도중 넘어져 또다시 응급 헬기로 이송 됐다. 이번엔 왼쪽 다리 골절상이다.

두 번째 부상 직전까지 본은 원더우먼 같았다. 왼무릎 십자인대를 다치고도 슬로프를 질주했다. 그는 오른쪽 무릎도 2년 전 티타늄 인공 관절로 갈아 끼운 상태다. 시속 130㎞를 넘나드는 속도로 질주하는 활강은 알파인 스키에서 가장 위험한 종목이다. 본은 두 차례 연습 활강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메달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결승 레이스 출발 13초 만에 기문에 부딪혀 넘어졌다. 인대가 끊어진 왼쪽 다리가 균형을 잡아주지 못해 공중에서 중심을 잃었고, 슬로프에 처박혔다.

부상을 극복하고 출전한 이번 올림픽에서 화려한 복귀를 노렸지만, 고질적인 십자인대 부상에 발목을 잡혔다. 활강 결승에서 균형을 잃고 슬로프에 추락했다. [AP=연합뉴스]
사고 직후 본은 코르티나 지역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이어 대형병원으로 재차 이송돼 수술대에 올랐다. 미국스키협회는 “본의 상태는 안정적이다. 미국·이탈리아 의료진이 집중 치료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당초 본은 “이번 올림픽을 포함해 올 시즌을 마음껏 즐긴 뒤 은퇴할 것”이라 말해왔다. 하지만 골절상 회복에는 최소 수 개월이 걸리는 만큼, 헬기에 실려 슬로프를 떠나는 장면이 그의 현역 마지막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 ESPN은 “그의 복귀가 올림픽 흥행에 도움이 됐지만,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진다면 올림픽 정신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진의 경고를 무시한 스포츠 정신은 만용일 뿐”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다가서려는 본의 도전 정신이 금메달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는 “본을 통해 나 또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지지 않았다”는 격려 메시지와 함께 #GoLindsey, #Vonn 등의 응원 해시태그가 줄줄이 달렸다. 커스티 코번트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린지 본은 언제나 챔피언이자 영감의 상징”이라며 쾌유를 기원했다.

린지 본이 결승에서 쓰러진 후 슬픈 표정으로 격려를 보내는 미국 관중들. [로이터=연합뉴스]
‘도전의 아이콘’이라는 상징성이 향후 광고 시장에서 그의 가치를 더욱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본은 이미 롤렉스, 구찌, 언더아머, 헤드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한 경험이 있다. 패션계의 아카데미로 통하는 맷갈라에도 수차례 초청돼 멋진 드레스 자태를 뽐냈다.

본은 올림픽 무대에서 금 1개와 동 2개를 목에 걸었다.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금과 동을 각각 한 개씩 거머쥔 뒤 무릎 부상으로 8년을 건너뛰었다. 이어 2018년 평창 대회에서 동 1개를 보탰다. 지난 2019년 오른 무릎 부상 여파로 은퇴할 땐 “내 몸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면서도 “부상은 내 스토리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꺼지지 않는 투지를 앞세워 그는 7년의 공백을 깨고 지난해 현역으로 돌아왔다.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본은 “능력이 닿는 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출발선에 서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끔찍한 부상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본에게 이번 도전은 실패가 아니다. 언젠가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서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해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